
"못생긴 사람은 사진 한 장 남기면 안 되나요?"
이 질문이 마음 한구석을 찌르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박정민 배우의 연기를 보러 극장에 갔다가, 예상치 못한 주제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습니다. 영화 ‘얼굴’은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외모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 영화는 40년 전 실종된 한 여성의 죽음을 추적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관객이 붙들고 나오게 되는 건 범인의 정체보다 “우리는 왜 얼굴로 사람을 판단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 작품이 단순히 충격적인 반전을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전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시선과 태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정민 연기가 만든 몰입의 순간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 방식이 처음에는 다소 낯설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는 관객에게 집중력을 요구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비선형 서사란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고, 과거 회상과 현재 장면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방식을 뜻합니다. 잘못 사용하면 이야기 흐름이 끊기거나 감정선이 분산될 수 있는 위험한 구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박정민 배우의 연기력은 그 구조적 혼란을 자연스럽게 흡수했습니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인물의 감정이 끊기지 않고 이어졌고, 관객은 시간의 이동보다 인물의 내면 변화에 집중하게 됩니다. 저는 어느 순간 이야기의 구조를 분석하기보다, 인물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에 더 몰입하게 됐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1인 2역 연기였습니다. 시각장애인 아버지 역할과 젊은 시절 아들 역할을 오가는 과정에서 박정민 배우는 목소리 톤, 말의 속도, 시선 처리, 몸의 긴장도까지 완전히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시각장애인 장인의 손놀림은 매우 섬세했고, 공간을 인지하는 방식 또한 현실감 있게 그려졌습니다. 반면 젊은 시절의 아들은 불안과 분노가 섞인 에너지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같은 배우가 연기했음에도 인물의 결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박정민 배우가 역할 몰입도가 높은 배우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 몰입도가 한 단계 더 확장된 느낌이었습니다.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 수준을 넘어, 인물의 삶을 설득력 있게 살아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굳어가는 표정과 흔들리는 눈빛은 대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했습니다. 그 덕분에 복잡한 서사 구조 속에서도 감정선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외모지상주의라는 불편한 진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를 가장 불편하게 만든 건 외모에 대한 편견이었습니다. 극 중 인물들은 죽은 여성을 “못생겼다”는 이유로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고, 심지어 가족들조차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설정이 과장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장면이 단순한 극적 장치라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현실을 압축해 보여주는 상징처럼 다가왔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외모는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가집니다. 첫인상, 취업 면접, 인간관계, 심지어는 호의의 정도까지 외모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를 우리는 쉽게 목격합니다. 저는 키가 작고 어리게 보여서 20대 때 고등학생에게 시비를 걸린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느꼈던 무력감과 억울함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외모가 사람의 능력이나 인격과 무관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외형을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합니다.
2023년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7명이 외모로 인한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피해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 1980년대 공장은 단지 시대적 배경이 아니라, 외모와 권력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외모를 이유로 업무 배치에서 배제되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외모를 빌미로 폭력을 행사하는 구조는 과거의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영화는 외모 차별이 거대한 폭력보다는 일상적인 말과 시선 속에서 반복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못생겼다”는 한 마디, 사진 찍기를 꺼렸다는 이야기, 얼굴을 두고 농담처럼 오가는 평가들은 당사자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습니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됐습니다. 나는 정말 외모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전이 주는 충격과 질문
영화를 보면서 저는 계속 두 가지를 궁금해했습니다. 엄마는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누가 엄마를 죽였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은 영화의 핵심적인 후킹 포인트(Hooking Point)입니다. 후킹 포인트란 관객의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며 몰입을 유지하게 만드는 서사적 장치를 말합니다. 이 영화는 ‘엄마의 얼굴’과 ‘범인의 정체’라는 두 개의 축을 통해 관객을 끝까지 끌고 갑니다.
저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특정 인물을 의심하게 됐고, 장면마다 단서를 찾으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반전은 단순히 “예상 밖이다”라는 놀라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반전은 이야기의 방향을 다시 정의합니다. 범인을 찾는 과정이 사실은 우리의 시선을 시험하는 과정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묻습니다. “당신은 정말 얼굴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나요?” 이 질문은 관객에게 그대로 돌아옵니다. 저는 외모를 전혀 안 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 외모가 준수하면 사람들이 호의적이고, 최소한 무시받을 일은 적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개인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회가 공유하는 암묵적 규칙이기도 합니다.
결말은 통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겁습니다. 반전이 드러난 뒤에도 시원한 해소감보다는 묵직한 질문이 남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얼굴을 기억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외모라는 기준이 사람의 존엄을 얼마나 쉽게 훼손하는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스쳐 지나간 시선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박정민 배우의 연기력은 이 무거운 주제를 끝까지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이 영화를 보실 계획이라면, 반전에 놀라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그 반전이 왜 필요했는지까지 함께 고민해 보시길 권합니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분이라면, 이 작품은 분명 오래 남는 여운을 남길 것입니다.